정보화마을 문경새재팔영사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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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문경새재팔영사과마을은 충청북도와 접경을 이루며 경관이 뛰어난 문경새재 도립공원과 월악산, 속리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으며, 80% 이상의 가구가 사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지형상으로 다소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쌓인 분지이며, 예부터 서울로 향하는 교통상의 요충인 관계로 지역민이 사회, 문화적으로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점이적(漸移的 서로 다른 지리적 특성을 가진 두 지역 사이에 위치하여 중간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지대)인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주민들은 전통적이고 인심이 순후한 고장입니다.

    교통상의 위치를 살펴보면 경상북도 서북부 내륙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상주시와 연결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국도에 의해 이화령을 넘어 충주, 서울 방면을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토종합개발 계획의 추진에 따라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연결되고, 대구에서 춘천에 이루는 중앙고속도로와 연계하여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팔영사과는 소백산맥 산간지대의 큰 일교차와 석회암 토질에서 생산되어 과육이 단단하고, 맛과 향이 뛰어난 사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에는 문경새재와 KBS촬영장, 전국 유일의 보양온천인 문경온천 등이 있으며 주흘산이 병풍 같이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전경1

    1) 팔영1리 -> 바바리 · 팔령리 · 문촌(文村) · 강촌(姜村) · 파발리(八撥里) 중국의 선비 "두잠"이 살았다는 파팔리(巴八里)와 지형(地形)이 비슷한 곳이라 하여 바바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파팔리와 영산 주흘산에서 각각 팔(八)과 영(靈)을 따서 팔령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세종 2년(1420)에 문여우(文汝雨)라는 선비가 해평(海平)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생활하면서부터 문촌(文村)이라 부르게 되었고 효종 8년경에는 강축문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하여 강촌(姜村)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요역성에서 충북의 연풍과 안보로 연락하는 파발꾼이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파발리라고도 합니다.

    전경2

    2) 득거리 -> 득거리(得巨里) · 득평(得坪)갈평쪽에서 흘러 내래오는 신북천과 팔령천이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한 마을로서 조선 초에는 황무지로 쓸모가 없던 이곳이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토사가 쌓이고 옥토가 변하여 큰 들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득평이라고 부르다가 현재는 이곳을 득거리로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전경3

    3) 팔령 2리 -> 영산골 · 영산곡(靈山谷) 고려 때 주흘산 기슭에 영지사(靈智寺)라는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고 하여 영산골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흘산의 주봉이 마을의 뒷편에 우뚝 솟아 있어 영산이라는 이름과 상통하여 영산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경4

    4) 비지재 · 비조령(飛鳥嶺)이 준령은 영산골에서 평천리로 넘어가는 주흘산 중턱에 위치한 고개로 옛날에 비조룡(飛鳥嶺)이라고 하는 전설상의 새가 영산골에서 평천으로 넘어가려고 날랐으나 주흘 준령이 가로막혀 단숨에 넘지 못하고 정상에서 쉬어 넘었다고 하여 비조령이라 하였으며 1700년경에는 최완룡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이 재를 비지재라고 불러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전경6 전경7